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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생각들

공부에 관해서, 공부란.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시험 과목을 빨리 쉽게 공부하는 유일한 방법은 

중학생 때부터 관련된 교과서 내용을 철저하게 이해하도록 독서하고 그 밖에도 다방면의 책들을 독서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지금 성인들이죠.

경제, 철학, 문학, 법률, 역사, 지리, 경영, 과학.. 이와 같은 모든 인문학 분야가 현대 시험들의 백그라운드이기 때문에, 

교과서를 비롯한 책들을 독서해온 사람들과 하지 않은 사람들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공학, 외국어, 프로그래밍 같은 특수과목들은 각자 개별적인 학습이 필요합니다만, 

그런 분야도 초, 중등때부터 중등수학, 중등과학, 중등영어, C언어 등 책들을 통해 기초를 잘 쌓아 놓은 사람이라면, 

후에 고등물리, 고등화학, 고등영어, 기타 라틴어 계열 외국어, 기타 프로그래밍 언어 공부를 하게 됐을 때 

반 이상 먼저 공부해놓고 들어가는 효과를 줍니다. 이는 과장이 아닙니다. 

세상의 많은 과목들이 생각보다 독립적이지 않고, 대부분은 서로 비슷한 과목이 있습니다. 이는 공무원 시험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무원학이라는 특수과목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행정학도 법학이나 사회학, 경제학과 겹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전혀 겪어보지 못한 분야를 처음부터 공부하는 것과 자신이 조금이라도 아는 분야를 공부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로 볼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사실을 간과합니다. 

그저 막연히 공무원 수험서를 남들 하는 만큼 열심히 외우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뭐 머리 좋은 사람은 타고난 암기력과 끈기를 바탕으로 9급 정도는 그렇게 합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수능이나 입사 시험, 행정시험, 법무고시 등의 어려운 시험을 준비할 때에 암기력 외에도 자신이 가진 백그라운드가 중요합니다.

수능의 경우 고등학교 때는 난이도가 높은 수리, 외국어 공부를 하느라 기타 과목을 공부할 시간이 거의 없기 때문에 

다른 과목들을 초, 중등 시기에 제대로 공부해놓은 사람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합니다.

때문에 초, 중학생때가 교과서와 그 밖의 인문학 분야(역사, 지리, 철학, 과학, 종교 등)의 서적을 공부할 시기로 가장 중요합니다. 

한 권 읽는데 1시간이면 족한 가벼운 만화책이 아니라, 지겨운 교과서나 한 페이지 넘기는데 20분 이상 걸리는 어려운 책들을 이해하기 위해

그 책보다 더 쉬운책(초등학교 교과서)이나 서적들을 찾아보며 끈질기게 공부해왔던 사람들은

이를 통해 여러 분야의 지식체계가 넓고 두껍게 존재하기 때문에, 새로운 과목을 접하게 되더라도 

이해가 빠르고 어떤 순서로 공부하는게 가장 좋은지도 알고 시작하게 됩니다.








학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비슷한 연관 학문들은 대부분

동일한 기초학문 혹은 연관학문 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ex, 동역학, 열역학 등 - 수학, 물리 /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 라틴어 계열 / 프로그래밍 언어 - C언어)







시험공부를 시작할 때, 자신이 어떤 사람이던 간에 이 부분을 명확히 인지하고 공부를 시작하는게 중요합니다.

자신이 그동안 해당 분야의 기초를 잘 쌓아온 사람인가? 해당 분야와 연관된 기초분야에 대해 남들과 비교해서 자신이 있는가?



왜냐하면 공부는 시작할때 해당 분야의 기본서를 통해 탄탄한 기초를 다진 경험을 하고나서 상위 학문을 진행하는 것이지, 

단순히 상위 학문의 어려운 정보나 공식을 암기하는 것은 공부가 아니라 암기이기 때문입니다. 

수능이나 행정고시 등 어려운 시험은 암기로만 되지 않는 시험들입니다.



예를 들어, 토목시험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역학과 재료역학을 알아야 하고, 정역학과 재료역학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대학물리 혹은 고등물리, 화학 등 기초학문을 완성해야합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자신에게 그런 기초학문의 완성이 잘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정역학과 재료역학을 공부하거나 (그 경우는 차라리 낫습니다.)

그런 과정도 없이 바로 해당 토목시험의 기출문제집이나 전용 학습서로 공부를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힘들어서 학원을 다니거나 동영상 강의를 듣죠. 그런식으로 대충 배운 다음에 전문학습서로 공부를하고 기출문제를 풉니다.



하지만 해당 학문의 기초에 대한 자세한 이해와 지식체계를 제대로 가진 상태여야만

상위 학문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다차원적이고 복합적인 문제에서 암기나 요령 없이도 쉽게 추론해서 답을 찾아 풀 수 있습니다. 

또한 고차원적이고 복합적으로 응용된 문제들은 요령으로 한계가 있습니다.



독서를 통해, 혹은 학창시절 학교공부를 통해 해당 과목(국어, 역사, 지리, 영어 등)의 기초에 대해 제대로 백그라운드를 만들어왔던 


성실한 사람들은 이미 백그라운드가 있기도 하고 새로운 지식과 이해의 백그라운드를 만드는 것에도 익숙하기 때문에 

관련된 과목이나 분야를 마스터하기까지의 시간이 남들보다 빠를 수 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면 서양문명사 전반에 대해 기초부터 공부했던 사람이라면 서양종교, 서양철학, 서양정치사 등 분야를,

동양 문명에 대해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라면 동양의 철학, 정치사, 종교사에 대해 새로 공부할 때,

전혀 바탕이 없는 사람에 비해 필요한 노력과 학습시간이 반 이하로 줄어들게 됩니다. 


이미 알고 있는 분야와 겹치는 분야를 공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 재미있고, 새로운 일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만의 지식체계, 머리속 서재를 넓히는 가속도가 붙죠.

그 분야에 전혀 낯선 사람들에 비해 자신이 익숙한 분야의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학습에 많은 시간이 들지도 않고, 이해도 훨씬 더 수월합니다.




이러한 백그라운드의 차이가 결과로 나오는 실제 예를 들려드립니다. 


제 주변에 전국에서 손꼽히는 일류 고등학교에서도 2, 3학년 내내 거의 전교1등, 2등을 했던 형이 있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까지는 완전 뒤에서 놀았는데 여자 관련 계기가 있어서 미친듯이 공부를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인지 그 형은 지역 최고 일류학교에서 교내 시험 성적이 전교 1,2등하고 있으면서도 항상 자기는 머리가 안좋은거 같다고 했습니다. 

남들보다 최소 2배는 공부해서 얻은 성적이라고 본인은 말했습니다.

그 형을 지켜본 가족들 말로는 밥먹을때도, 똥쌀때도 항상 책을 들고 들어갔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모의고사 성적은 이상하게도 항상 전교 10위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위에서도 그렇고 본인도 그렇고 당연히 서울대 법대 합격을 예상했습니다. 

장학금 받고 들어갈지 안갈지가 문제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형은 결국 수능시험에서도 좋은 성적이 나오지 않는 바람에 원치않던 고려대, 연세대 등으로 미끄러졌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재수를 했는데도 점수는 큰 차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떨어졌죠.

그때 저는 그 형이 옛날에 자기 머리가 안좋다고 자주 말했던게 아주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후에 제가 관련 공부를 해보고서 깨달은 것은 그것은 머리의 문제가 아니라, 기초체계를 다져온 시간의 차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교내 시험과 자체 모의고사에 비해 깊이가 깊고 폭넓은 기초지식을 요구하는 수능의 복합문제들 앞에서 

초, 중학교때부터 충실하게 넓고 깊은 기초지식들을 쌓아왔던 친구들에 비해

그 형은 중2 때부터 허겁지겁 기초지식을 쌓고 그위에 고등지식을 쌓았기 때문에

암기의 비중이 크고 고차원적, 복합적인 문제 출제가 적은 교내 시험에서는 좋은 성적이 나왔지만 

고차원적, 복합문제가 승패를 가르는 수능에서는 좋은 성적을 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간단합니다.

그 형처럼 자신의 기초와 포괄적 이해도가 부족한 것을 아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 결핍을 알고 미친듯이 공부를 합니다. 

식사시간에도 책보면서 먹습니다. 화장실도 책 들고 들어가고요. 시험기간에는 잠도 3, 4시간 잤다고 들었습니다.

공부를 다급하게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매일 잠자리에 누워서도 그날 공부한 내용을 되새김질하고,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재빠르게 씻고 먹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폅니다. 


자신의 부족한 기초지식의 넓이 때문에해 어떤 깊고도 넓은 복합 문제(내 운명을 결정할 문제)를 풀지 못하는 상황을 만나는 것에 비하면 

그러한 작업들은 아무런 고통도 아닙니다. 

해당 분야를 공부하는데 도움이 되는 자신만의 넓은 지식창고가 없고 뿐만 아니라,

공부하는 습관도 해당 분야의 노하우도 없는 사람들이 막연히 해당 시험의 공부를 시작했다면 그런 조급한 마음가짐을 배워야 합니다.

이미 그 사람들은 시작부터 상당히 불리한 조건이니까요. 무기 없이 전장에서 싸우는 것이나 다름 없는 상황입니다.





남 얘기만 하는것 같아서 제 이야기도 말씀 드리겠습니다. 상당히 깁니다만. 

저는 앞에 말했던 형과 달리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해서 중학교 때까지의 공부가 비교적 쉬운 편이었습니다. 

다만 불안했던 집안환경(가정불화, 아버지, 할아버지 파산) 탓에 중2때부터 공부를 하지 않았고, 수학은 거의 손을 놓았습니다.

컴퓨터게임과 해킹을 좋아해서 경찰서, 검찰 등도 들락거렸습니다.

마음 잡고 진심으로 공부를 시작한 것은 고2 때였습니다.

계기는 간단했습니다. 저희 고등학교의 훌륭한 학교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의자에 오래 앉히면, 

그리고 무지막지한 몽둥이질을 하면 대부분 공부를 하게 된다는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다음의 내용은 소설이 아니라 실제 제 이야기입니다.






 공부에 관심이 없었던 저는 고1때부터 아침 8시부터 밤 9시까지 학생들을 붙잡아두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아침잠이 많던 저는 입학하자마자 매일 아침부터 밤 늦까지 강제구금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수시로 체벌을 일삼는 그곳을 벗어나고 싶어 안달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고2는 밤 10시, 고3은 밤 11시가 하교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입학한지 얼마 안되서 등교대신 몰래 가출을 해서 다른 지역으로 도망갔었고 

그날 집에 다시 돌아와서 학교가 가기 싫으니 네트워크 보안 공부를 독학해서 프리랜서로 먹고 살겠다며, 

고등학교 졸업장이나 대학교 졸업장은 저에게 필요없다고 호소했습니다. 

꽤 구체적인 계획이고, 중학생 때부터 이미 개인적으로 관련 공부를 조금씩 하고 있던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저에게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그 후에 하라고 부탁하셨고, 저는 어쩔 수 없이 계속 그 지옥같은 학교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억지로 다니게된 학교 생활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1학년때는 아침 단어시험이나 수학, 영어시간의 쪽지시험 결과로 손바닥 혹은 발바닥에 플라스틱 같은 매로 맞고 말았지만. 

제가 2학년때 만난 담임 선생님은 한문 교사셨지만, 수능의 어려움과 학급 학생들의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이셨습니다.

그 분은 우리가 1년 반 뒤의 수능을 대비해 초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학급 첫 날부터 이렇게 말해주셨습니다.



나는 어린 너희들을 만나게 되서 너무 반갑고 기쁘다. 너희들은 때가 묻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1년 7개월 뒤의 수능이 너희의 남은 50여년 인생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일임에도 너희는 긴장이 없다. 

하지만 혹독한 고3 생활과, 수능 이후의 세상에 나가야 하는 너희들을 지금 아무런 준비도 못한 상태로 내보낸다면, 

너희가 나를 원망할 것이고, 그렇다면 나는 그것에 대해 이후의 평생동안 너희에게 죄책감과 미안함을 안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내일부터 너희를 긴장하도록 만들어 다른 사람이 되도록 만들 것이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써본 가장 유용한 방법은 바로 체벌이다. 수많은 너희 선배들이 그것을 입증해줬다. 

나는 너희가 겪어본 누구보다도 아픈 매를 때릴수 있다. 

오늘은 가져오지 않았지만, 정말 죽을지도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아픈 매를 나는 가지고 있다. 

그 매는 자신을 때려달라고 했던 어떤 제자가 나에게 준 훌륭한 매이다. 

그 매로 맞고 나서 도저히 못버티겠다며 전학을 간 선배들도 두 세명 있다. 

자신이 못견딜거 같으면 오늘 나에게 말해라. 그런 사람은 내가 반을 바꿔주겠다. 

하지만, 그 후로는 누구도 중간에 바꿀수 있는 기회는 없기 때문에 내일부터는 각오를 하고 와야 할것이다.


저는 가끔 지나치며 봤던 저 인상 좋아보이는 2학년 한문선생님을 담임으로 만난 것이 이 정도의 심각한 일인줄은 이전에는 전혀 모르고 살아왔었습니다.



나는 다른 반 아이들에게는 먼저 맞겠다고 찾아오지 않는 이상 세게 때리지도 않는다.

너희를 최선을 다해 세게 때리는 일도 나에겐 쉬운 일은 아니다. 나는 체육선생님처럼 젊지도 않다.

하지만 너희를 위해서라면 한 사람에게 100대라도 때릴 것이다.

그걸 견디는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정도로 성적이 올라 내년 수능때엔 웃게 될 것이라고 약속한다. 

나는 2학년때 내 반을 거쳐간 고3 몇명은 지금도 찾아와서 일부러 맞고 갈때 가장 기분이 좋다. 

그 친구들이 내 반을 졸업하고 나서도 그 긴장을 유지한다는 증거니까. 

나는 너희들도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그 다음 날부터 1학년이 끝나는 날까지 우리는 여자든 남자든 매일 자진해서 맞았습니다. 


"오늘 자진해서 사랑의 매 맞을 사람?"


첫 날에는 선생님이 두 번, 세 번 말씀하셔도 아무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맞을 사람 아무도 없어?

그럼 내가 맞아야겠네. 음... 누구가 좋을까. 

그래 xx 나와라. 몸이 좋아보이네.




 우리는 모두 당황한 채로 어쩔 줄 몰라했지만 그는 건장한 남학생을 지목했습니다.


xx야 이 매 들어. 

이걸로 니 힘껏 나를 때리는거야.

학생들이 마음가짐이 안된거는 선생 잘못이야. 

살살치면 그 잘못으로 니가 맞는거야.



어쩔줄 몰라하던 학생은 겨우 용기를 내 몽둥이를 휘둘렀지만, 선생님의 기준에서는 약한 매였습니다. 

선생님은 몸을 돌리고 그 학생에게, 

"분명히 나를 세게치지 않으면 니가 세게 맞는다고 했지? 돌아."


하고나서 학생의 엉덩이를 나무 몽둥이로 가차없이 5대 후려쳤습니다. 

조용한 교실에서 사람 허벅지를 나무 몽둥이로 때려서 낼 수 있는 소리가 얼마나 큰지 처음 알게된 때였습니다.

그리고 그게 얼마나 아픈 고통일지, 나 또한 이유없이 수시로 저렇게 맞아야 하는 것인지 극심한 내적갈등을 겪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다시 칠판 쪽으로 몸을 돌리셔서 자신을 방금처럼 5대 치라고 하셨습니다. 

그 학생은 얼굴이 벌개져서 이번에는 본인의 힘을 다해 뒤돌아선 선생님의 엉덩이를 몽둥이로 내리쳤습니다. 


그래 이 정도는 쳐야지. 

자, 앞으로 너희는 이 정도로 세게, 최소 3대 씩 맞을거야. 

자발자가 없으면 내가 계속 맞고.

자, 자발자들 아직도 없나? 너희들이 돌아가면서 선생님 때릴래?

맞기 싫으면 선생님을 때리면 된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전부 앞으로 나가서 3~7 대씩 맞았습니다. 3대만 말하면 이상하게 더 세게 때리시는 것 같기도 했지만,

그 후 우리는 정기적으로 보는 수학, 영어 쪽지시험 결과가 나올 때는 말할것도 없었고, 

가끔씩 아무 일 없어도 자발자들이 대여섯 명씩 교실 앞 나와 매를 맞는 상황을 일상적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자발자의 숫자가 부족하면 웃으면서 몇몇 학생들과 눈을 마주쳐서 나오게 하셨고, 

우리가 목표한 기대에 못미치는 학급성적이 나온 날이나, 철없이 수다를 떨어 교실이 시끄러워진 날에는 

우리가 야자시간 1시간 가량을 함께 매 맞는 시간으로 쓰게 해주셨습니다. 

저는 가끔식 선생님의 눈과 마주쳐 반강제 자발자로 끌려나갈때도 늘 3~4대 정도의 최소 댓수만 맞겠다고 말해서 

조금만 맞았지만 그럼에도 죽을듯이 아팠습니다. 그런 날은 집에가서 바지를 벗어보면 허벅지 뒤쪽에 크고 시퍼런 멍들이 들어있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저는 그 분과 학교 시스템 덕분에 (저희는 여름방학도 1주일, 겨울방학 2주일 정도 밖에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나마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고, 모의고사 성적이 잘 나올수록 덜 맞게 되니까 실제로 2학년 내내 열심히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학급에 좋은 일이 있거나, 우리가 뭔가 성과를 내면 정말 환한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꾸밈없는 칭찬을 해주시곤 했는데, 

그럴 때면 평상시 가지고 있던 마음 속 원망과 두려움들이 부끄러워지기도 했습니다. 

그 밖에도 그는 상당히 진보적이고 독특한 선생님이었습니다. 

2학년동안 우리는 아침마다 혹은 교실 밖에서 마주칠때마다 "안녕하세요" 라는 말은 절대 쓰지 않고, 

서로 대등하게 손을 흔들면서 "사랑합니다." 라고 인사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저는 복도에서 선생님과 마주쳐서 그런 인사를 해야될까봐

복도에 나가는 것조차 꺼리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3학년이 되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그런 낯간지러운 인사를 

이제는 안해도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확고한 소신을 가진 분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그 덕분에 고3 생활은 남들과 다르게 편하고 즐거운 기간이었습니다. 

아침 7시에 일어나서 밤11시까지 하는 공부가 힘들긴 했지만 괴롭진 않았습니다.

과학은 고등학교 때 시작했어도 그다지 어렵지 않았습니다. 

문학은 원래 책을 좋아했던 까닭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외국어도 어려서부터 흥미를 가지고 해온 까닭에 어렵지 않은 과목이었습니다.

하지만 수학이야말로 곤욕스러운 과목이었습니다. 저는 고3 수능 준비하는 시간의 대부분을 수학을 공부하는 것에 보냈습니다. 

수리영역 동영상 강의를 보기도 하며 아주 기본적인 이론 위주로 공부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정석 책으로 제대로 공부하려고 해도 책의 내용 자체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자존심 때문에 중학교 수학책들을 학교에 가져와 공부하지 않은 것은 큰 잘못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쩔수 없이 문제집 위주로 풀어보는 공부를 주로 하게 되었습니다. 수학을 잘하던 친구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첫 수능 결과를 가지고 약간 욕심에 넘치게 인서울 중위권에서 제가 원했던 학과들에 지원했다가 모두 한끗차이로 탈락했습니다. 

재수(혹은 긴 시간의 공부)를 하기 싫었던 저는 부모님을 설득해 (어차피 기대가 없으셨던 부모님들이신지라 쉽게 설득했었습니다.)

집 근처 지방대학의 미달학과에 지원해서 1학기 동안 다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교수님들의 수준과 학생들 수준이 생각보다 너무 낮아서 학교에 다니면서도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들 공부를 거의 안하다시피 하던 친구들이니 경쟁률이 100% 미만인 미달학과에 왔었고, 

온 후에도 딱히 새마음으로 열심히 해보겠단 생각들은 없는 친구들이었습니다.

고등학교때 평범하던 저도 그 곳에서는 전액장학금을 받고 입학한 과탑 에이스가 되어있었습니다. 

학과도 컴퓨터 관련 학과라서 컴퓨터언어 베이스가 있던 저는 친구들과의 격차가 매우 컸습니다.

저는 그런 친구들과 대학생활을 하는게 한심하기도 했고, 더불어서 개인적인 절망과 후회할 일도 찾아왔습니다.


-현금으로 받은 전액 장학금으로 게임 아이템을 사려다 사기를 맞아서 크게 절망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긴 일입니다.-

당시에는 정말 정신이 멍하고, 내가 뭘 한건가 자책하게 되었습니다. 나란 놈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거냐고.


그래서 1학년 1학기를 마친 후의 여름방학 중간 쯤이자, 수능을 3개월 반 정도 남겨놓은 저는 부모님께 학교를 휴학하고 다시 

대입을 준비하겠다고 말씀드리고 수능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스스로 들어온 인생의 바닥에서 스스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하며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처음 2, 3일은, 아직 긴장도 안되고 실감도 안되어서 몸풀기 느낌으로 집에서 외국어, 과탐, 수리 영역 등을 

8개월 만에 들추며 기억 되살리기를 했습니다. 

책을 펼치기 전에는 긴장감이 앞섰지만, 수능때 공부했던 책들을 오랜만에 다시 펼치고 넘겨보니 

점점 예전에 공부했던 기억들이 되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2개월 반 정도를 개인적으로 부족한 분야인 수학만 공부했습니다. 

이번에는 아예 수학을 처음부터 다시 공부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1주일 정도를 중학교 수학 교과서책들을 정독하고 풀어보는데 쓰고

이후로는 2달간 수학의 정석[기본]이라는 고등학교때도 한 번도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던 두꺼운 기본서 책을 아침부터 밤 11시까지 읽고, 

연습하고, 풀었습니다. 고등학교 교과서도 잠깐 봤었지만, 정석만큼 이론 설명과 문제구성이 풍부하지 않아 던져버렸습니다.



저는 애초에 수능 공부를 다시 시작하면서, 이 과목을 점령하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고, 나머지 분야도 손댈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중학교 교과서부터 한 페이지 이해하는데 2시간이 걸리든 3시간이 걸리든 전부 이해할 때까지 다른 책을 참고해가면서 이해를 하고 넘어갔습니다.

그 결과 2개월 만에 수학의 정석을 처음부터 끝까지 2번씩 풀고 공식들을 외웠습니다. 

대부분의 예제, 연습문제들을 2번 정도 풀게 되니, 수학 실력에 자신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심화문제 중에 어려운 문제는 3번도 풀었습니다.

수학이라는 학문 자체를 처음으로 기초부터 완벽히 공부했구나 하는 생각에 커다란 성취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기간들 중에, D-100 이 되기 처음 2주 정도는 집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점심시간에는 밥을 먹고 나서 머리를 풀겸, 

사회성도 유지할 겸 거실 컴퓨터로 카트라이더를 2, 30분씩 했습니다.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 씻고 밥먹고 아침부터 방에서 공부하다가 어머니가 혼자서 점심을 먹고나서 거실에서 카트라이더를 5판 정도 했습니다. 

그 기간 카트라이더가 저의 유일한 휴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저 스스로에게 허락한 유일한 공부 외 활동이었습니다.

카트라이더는 고1때 처음 했던 게임이었는데, 대학시절에 너무 열심히 햇던 탓에 이미 최고수 반열이었습니다.

한 판당 보통 3분 정도 시간이 걸렸으므로 질리도록 해도 30분 정도 밖에 소모되지 않았습니다.  

익숙한 맵을 4, 5판 정도 하면서 경쟁자들에게 눈물을 안겨주고, 미련없이 다시 방으로 돌아와서 저녁 먹을 때까지 공부를 했습니다. 


저녁을 먹을때도 필요 이상의 대화를 하기 싫었기 때문에 식탁에 중학교 수학책이나 정석 책을 펴놓고 보면서 먹었습니다. 

가족들은 그런 모습에서 그 사람의 의지를 알수 있기 때문에 더욱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게 됩니다.

저녁 이후에는 방에서 공부할때는 누가 불러도 모를정도로 귀마개를 끼고 공부했고, 

거실이 시끄러운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그럴 때는 귀마개를 낀 상태로 소음의 진원을 찾아가 아무 말 없이 그 옆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어차피 수능 100일부터는 아침부터 도서관에 가서 하루종일 공부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큰 스트레스가 되지도 않았습니다.

 
수능 100일이되자 저는 남은 100일 하루하루를 1차 비상사태로 저 스스로 규정하기로 정했었기 때문에, 매일 아침에 정석과 연습장을 들고 집과 가까운 대형도서관으로 향했습니다. 보통은 길을 걸으면서도 정석 책을 보면서 갔습니다.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서 (동생이 고등학생이라 일찍 일어나는게 힘들진 않았습니다.) 가족들과 식사하고 씻고 나서, 8시에 집을 나와,

  8시 30분까지 도서관 열람실에 들어가서, 점심 먹을 12시까지는 아무런 다른 일도 하지않고 오로지 수학의 정석, 그것만을 읽고, 

문제를 풀다가 점심 시간인 12시가 되면 제가 가장 좋아하는 도서관 앞 분식점으로 가서 천오백원하는 김밥 한 줄을 식당 테이블에서 먹는 것이 100일간 어기지 않고 해왔던 오전 일과였습니다. (마지막 한 달은 수학의 정석이 아닌 나머지 과목 공부와 수리영역 기출문제 공부) 



도서관 다닐 때의 식사 관련해서 얘기를 하자면, 김밥 손님에게 오뎅국물과 김치도 같이 내어주는 도서관 근처의 한 김밥집은 정말 천오백원(지금 물가로 2000원)치고 너무나 영양도 맛도 좋은 곳이었습니다. 

김밥 한 줄로 점심을 먹고나서 저녁7시가 되기 전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습니다. 

가볍게 먹다보니 흔히 오는 식곤증도 전혀 오지 않았습니다. 간식도 따로 먹지 않았습니다. 다소 배고픈 상태에서 저녁까지 머리가 잘돌아갔습니다.

(먹는 것이 집중하는데에 중요하다는것을 처음 깨달았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오후 7시정도 까지 정석을 보고나서 집에 와서 바로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또 예전처럼 방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다가 

수능 30일부터는 아예 저녁도 도서관 앞 김밥으로 떼우고 밤 11시쯤에 배가 고파서 걸을 힘도 없어서 버스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다시 공부를 시작하기로 마음 먹은 순간부터, 저 자신이나 가족의 목숨에 위태로운 상황이 생기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처음에 마음먹은 공부 생활을 지속하기로 마음먹었었습니다. 어느정도의 배고픔은 공부를 위해서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특히, 밤 11시 버스 막차시간에 도서관을 나와 버스를 타는 사람들은 

정말 집중력 좋게 하루를 통째로 바쳐서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밤 9시, 10시가 되면 짐을 사서 열람실 문을 나갑니다. 






 공부했던 순서를 보면 중학교 교과서와 '수학의 정석'을 공부했던 것이 처음 2개월이었고, 

그 후 1주일 정도를 정석 연습문제 중에 어려운 문제들, 모의고사 및 수능 기출문제들을 풀고나서 

그 문제들 중에서 내가 틀렸던 문제들을 다시 풀었습니다.


첫 날에는 그런 고난이도 문제들을 한번 씩 대충 풀어보니 혼자 실력으로는 어려운 문제가 많았습니다. 좌절하지 않고,

그런 문제들을 하루종일 해답을 보지 않고 혼자서 풀기 시작했습니다. 2개월동안 열심히 연습한 저 자신을 믿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루 5시간을 한문제 푸는데 쏟았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죽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난 왜 이걸 못풀까. 지난 2개월은 의미가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이것밖에 안되는 놈일까. 난 역시 안되는 것일까.




고등학교에서 친구들과 있을때 했어야 했던 일이었습니다. 친구들보다 수학 실력이 낮다는 자격지심 때문에 

수학을 잘하는 친구들에게 어려운 문제를 물어보지도 않았고, 남들 앞에서 한 문제를 두고 하루종일 붙잡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 실력이 생긴다는 것을 이 시기에 피말리는 심정으로, 하루 전체를 고작 두세 문제를 겨우 푸는데 쏟아부으며 

몸으로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해도 안되는 문제만을 나중에 풀이 해설을 보고, 그 다음에 해설없이 매일 다시 풀어보는 식으로 문제를 체화시켰습니다.


일주일 정도를 그렇게 보내면서 웬만큼의 문제들도 제 힘으로 풀어본 다음에 더 이상 수리 영역에 시간을 배분할 수 없음을 결정하고,

급히 나머지 1개월 1주 정도를 외국어, 과학탐구, 문학 분야를 공부하면서 틈나는대로 어려웠던 수리문제 다시풀기로 나머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수능 전 마지막 3일은 새로운 것을 전혀 머리에 넣지 않고, 이미 공부한 내용들만 반복해서 훑어보고 

이미 풀어봤던 어려운 문제들을 다시 풀어보는 반복만 했습니다. 그 결과 다시 보게된 수능의 시험성적은 저번 수능과 거의 비슷한 성적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안전하게 학과들을 약간 하향지원해서 인서울 4년제 중위권에 합격률을 높였고, 실제로 그중 하나에 최종합격했습니다. 

원하는 학과는 아니지만 취업이 잘되기로 유명한 학과였습니다.







제가 어떻게 3개월 반만에 손놓고 있던 수능 점수를 복구할수 있었을지 가끔 생각해봤습니다. 

그것도 수리과목을 제외하면 거의 한달만에.






고등학생 1학년 당시에 아직도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습니다. 

저희 학교는 매일 아침 8시 30분에 수능 영어단어 20개씩 해당 단어의 뜻을 써넣는 암기시험을 봤습니다. 

17개 이하는 틀린 개수대로 손바닥을 자로 맞았습니다.

저는 공부를 열심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꼭 기준선보다 3~6문제 더 틀려서 자를 맞았습니다. 

하루는 그걸 봐오던 어떤 친구(내신성적이 항상 좋던 친구) 가 제 연습노트를 보고서 답답하다는 듯이,


"야, 시험 잘보려면 그냥 단어 하나를 대표하는 기본 뜻만 [Tolerance : 관용] 이런식으로 외워. 

 넌 왜 어근이랑 제 2 뜻, 제 3 뜻, 유의어, 반대어까지 몽땅 다 외우냐. 멍청하게."



그 친구는 저처럼 급박하게 공부하지 않고도 거의 매일 19~20개를 맞췄습니다. 하지만 저는 매를 맞는것도, 점수도 중요하지 않았고, 

오직 내가 처음접하는 그 단어의 뜻에 대해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2년 내내 그런식으로 공부했습니다.

그 결과 3학년 쯤 되자, 외국어 영역 모의고사에서 전교 1, 2% 안에 들었습니다. 





저는 제가 평소에 공부는 싫어했어도 독서를 비롯한 다양한 방면들에 대해 배우는 것을 좋아했고, 

공부할때도 남들처럼 기계적으로 배운게 아니라,

당장 기말고사에서 성적은 안나올지더라도 그것에 대해 제 방식대로 철저히 이해하고 독서하는 자세로 공부했었기 때문에, 

남들보다 적은 시간을 공부하고도 1년간 공부를 했던 사람들정도의 성적이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제 내신 성적은 1학년때는 반에서 80%, 2학년때는 60%, 3학년때는 50% 정도의 성적이었습니다. 

남녀 공학이다보니 힘든 점도 있었지만 교내 시험에 있어서는 완전히 중하위권이었습니다. 

고등학교 과목들은 모두 기초 백그라운드 학문이 존재하는 과목들이고, (중등과학, 중등수학 등)

자신이 어느 정도 그 백그라운드와 이해가 있고 러프하더라도 그 백그라운드를 조합해서 응용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어려운 문제에 대한 풀이능력이 달라집니다. 






저는 남들과 달리 그러한 이해와 지식체계를 천천히 만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교내 시험을 제대로 치룰 수 없었지만,

 3학년 말이 되어서 진행된 모의고사들이나 실제 수능에서는 내신과 비교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습니다. 

앞에서 예로 들었던 머리가 나쁘다고 자책하던 전교 1등 형과는 반대 상황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7급 공무원, 회계사, 행정고시에 합격한 사람들이 다 어려서부터 공부 열심히 해온 서울 명문대 출신 사람들은 아닙니다. 

이름 없는 지방대생들도 다수 합격하는 시험들입니다.  

그 사람들이 합격한 이유는 자신들의 백그라운드가 부족한 것을 인정하고 노력과 체력으로 메꿨기 때문입니다.



공부는 운동처럼 습관이고 자산입니다. 하면 할수록 근육이 붙습니다.

그동안 본인이 공부를 열심히 안해왔다면 늦게 시작한 시점부터 대가를 치뤄야합니다. 

본인이 공부와 안맞는 것을 알면서도, 또한 공부하는 습관도 없는 것을 알고 수험준비를 시작해서

고작 9급 시험도 자신에게는 너무 어렵다고 하시는 분들,

노량진에서 잘가르쳐주는 강사 수업을 들으며 남들 하는만큼 하면 합격할 수 있겠지라는 안이한 생각을 하시는 분들,

나는 머리가 나쁜 편은 아니니까 조금만 열심히 하면 합격할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께, 


차라리 혼자서 매일 아침 도서관 출근하면서 관련된 기초서부터 하루종일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처음 선택한 기초서가 도저희 모르는 말도 많고 이해가 되지 않아 어렵다면 

더 쉬운 관련 기초서들을 전부 찾아서 보고, 그런 다음에 수험서를 보면 쉽게 느껴집니다. 거의 아는 내용이니까요.



그런 방법으로 책을 수십권 읽으면 해당 분야에 대해 철저히 자신만의 지식체계가 잡히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단기간 집중해서 하는 공부기간에는 하루종일 공부에만 집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침 9시에 가서 밤10시까지 공부하면서, 그중에 자신이 쉬는 시간이 어느정도인지 정확하게 체크하고,

최소한의 휴식시간만 갖도록 하고 가끔 머리가 멍해질때는 휴대폰을 보는 등의 정신력 낭비를 하는 대신

말 그대로 머리를 완전히 쉬면서 멍때리거나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다가 자리로 돌아가는게 좋습니다. 아무런 생각도 안하는 시간인거죠.

그러면 쉬는 시간에도 자기 머리가 무의식 속에서 이전에 공부한 내용들을 정리하고 이해가 안됐던 부분들을 되짚습니다.

꼭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들, 자신의 모든 정력과 정신력을 공부에 쏟아부으며, 

이런 식으로 공부하는 것이 최선인지 항상 고민하면서, 이런 속도로 공부하면 언제 마칠 수 있을지를 항상 걱정하면서

하루 6시간, 7시간 자면 나머지 17, 18시간을 알차게 쓰면서 하루를 철저히 자기계획대로 공부하는 습관을 지켜야합니다.


예를 들어, 아침에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서 정해진 공간에서 공부를 시작하고, 정해진 점심시간에 

밥을 먹었는데 이후 조금이라도 잠이 온다면 식사량을 줄여야합니다. 속알머리 없는 배고픔은 목표를 위해 참아야 할 부차적인 문제밖에 안됩니다.

체력과 정신력이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공부를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 작은 과정 하나하나를 성취해 나간다면 점점 몰랐던 자신의 한계를 알게되고, 

공부에 대해서도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가장 경계해야할 상황이 위와 같이 힘들게 만들어온 생활습관에서 조금씩이라도 벗어나기 시작하는 상황입니다.


하루하루 쌓아 온 귀중한 습관들을 목표한 수준의 지적 상태가 될때까지, 혹은 수험 당일까지 유지하셔야지,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내일은 좀 놀아야지, 오늘은 좀 쉬어야지, 오늘 저녁은 좀 맛있는 거로 배부르게 먹어야지 하고 풀어주면 

그 후에는 이미 깨진 발란스로 인해 공부 페이스는 돌이킬수 없게 됩니다. 


시험을 마치는 그때가 되기 전까지는 자기 생명의 위협이 생기지 않는 한, 자신의 습관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믿으십시오. 



공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저의 고2때 선생님이 만들어 주셨던것처럼, 

온 몸을 바쳐서 정해놓은 기간동안 몰입하는 습관과 그 태도를 마지막 순간까지 유지하는 마음가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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